
[스포츠서울닷컴ㅣ장 민 박형남기자] 1977년 경남 함양에서 올라온 시골뜨기 청년이 중앙일보 편집국 사진부 서무 견습으로 입사했다. 사진기 한번 만져 본적이 없던 이 소년은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사진기자들의 바쁜 일상과 앵글에 대한 열정을 가까이 지켜보면서 사진기자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청년은 반백이 되어 한국의 대표적인 민간단체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하는 ‘포토그래퍼’(photographer)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한국 청년회의소(JC)의 영원한 사진반장 하충현 부장(56)이 주인공이다.
하 부장은 1978년 한국JC에 입사해 40명의 중앙회장을 비롯해 지부장까지 포함할 경우 400명에 달하는 한국의 유명 인사들을 앵글에 담았다. 현재 갖고 있는 필름분량만도 40박스(라면박스 기준)에 달한다.

<사진=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문희상 국회부의장, 염동연 전 의원, 정갑윤 의원, 김학송 의원>
‘정치 사관학교’ 산실...문희상 등 숱한 유명 정치인 사진에 담아
한국JC는 18대 국회에만 27명의 의원을 배출할 정도로 ‘정치 사관학교’로 명성이 높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오세훈 서울시장, 정몽준 원희룡 장광근 남경필 문희상 천정배 백재현 정갑윤 의원 등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유명 정치인을 배출했다.
강신호 전경련 전 회장, 조중건 대한항공 부회장, 구태회 LS 전선 명예회장 등 재계 인사 상당수도 중앙회장과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JC를 이끌었다. 만 20세~42세 청년들이 회원으로 지역사회개발과 리더십 함양, 국제교류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JC가 어떤 곳인지 몰랐죠. 솔직히 조폭 단체인줄 알았죠. 들어오니 전혀 그런 곳이 아니더군요.(웃음). 친척 소개로 입사했는데, 딱히 할 일이 없더군요. 한때 사진부 서무 한 경험을 살려 사진부를 만들었죠. 아는 분한테 최소한의 사진이론만 배우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지 벌써 30년이 흘렀네요.”
숱한 인맥 지인 두고 있는 하충현..."JC 전국 지부만 400개"
하 부장은 전국 각지에 숱한 인맥과 지인들을 두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JC 전국 지부가 400개에 달해 시골 구석구석마다 그의 입김이 미친다. 30년간 일하다보니 지부 사정이나 그곳 출신 인물에 대해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다.
성격 자체가 유연해 한번 만나면 금방 ‘형님’ 아우‘가 된다. JC에서 ‘하 반장’이 고유명사로 통하고, ‘만인의 삼촌’이란 닉네임을 얻었다. 중앙회장의 최고 자문 위원이자, 인간적인 문제까지 허물없이 상의하는 JC의 영원한 형님과 같은 존재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JC 오기 전까지 양복을 입어본 적이 없어요. 시골에서 쭉 자라 세상물정을 몰랐죠. 들어온 지 얼마 안 돼 회장(이정무 전 건교부 장관) 취임식을 하는데, 정말 장관이더군요. 양복을 입은 잘생긴 젊은 남자들이 회장을 에워싸고 일렬로 들어오는데…. 그런 광경 처음 봤죠. 이런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 모든 것이 존경스럽고 신비로웠습니다.“
그는 전형적인 시골 농가에서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향에선 한때 주먹으로 이름을 날릴 정도로 싸움꾼이었다. 당시 부당한 선배들에게도 서슴없이 덤비고 잘못 걸리면 끝까지 물고 늘어져 항복을 받을 때까지 싸우는 ‘악바리’였다. 정규교육도 변변히 받지 못했지만 정의감이 유달리 강한데다 사람을 좋아해 동네에선 마당발로 통했다. 그런 탓인지 '사람 장사'가 최우선인 JC는 가뭄 끝에 만난 단비처럼 반가운 존재였다.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첫 해외여행'..."바나나 가져오다 눈물흘리기도"
그는 지금도 1985년 문희상 당시 중앙회장을 수행 차 처음 나간 해외여행을 잊지 못한다. 52년 평택에서 창립된 한국JC는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70~80년대 JC 임원진에게 비자 발급 혜택이 부여되어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했다. 외국을 나간다는 것이 선택 받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시절, 큰 보람과 자부심을 느꼈다. 이 덕분에 중앙회장 출마 등 문희상 국회부의장과 함께 했던 사진들이 하 부장의 앵글에 모두 담겨져 있다.
“아이구! 정말 대단했습니다. 필리핀을 가는데, 여기저기서 축하인사를 받았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더욱 웃기는 것은 지인들이 꼭 바나나 좀 사오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열에 아홉이 바나나 민원을 제기했습니다.”
바나나가 몹시 귀하던 시절이었다. 바나나 한번 먹으면 자랑하던 때였다. 하 부장은 현지에서 기를 쓰고 바나나를 모았다. 호텔에서 지천에 깔린 바나나를 먹지도 못하고 비닐봉지에 무조건 담았다. 귀국하려고 보니 한 박스 분량이었다. 문제는 귀국 당일 공항에서 발생했다. 관세 담당자들이 반출이 안된다며 압수하려 했던 것이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아무것도 안 사왔다. 어린 아이들이 오로지 아빠의 바나나만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며 눈물로 호소했지요. 회장단은 저 때문에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미치겠더군요. 결국 제 호소에 감동한 관세담당자가 예외를 인정해 줘서 무사히 바나나를 갖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도 이제는 서른다섯 번 해외출장을 다녀온 ‘글로벌 신사’로 변신했다.

역대 대통령 예방 위해 청와대 출입..."김영삼 전 대통령 패기 넘쳐"
그의 청와대 순방기는 역대 대통령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 예방을 위해 집행부와 함께 5공화국 이후 역대 정부가 들어설때마다 줄곧 청와대를 찾았다.
“전두환 대통령 때는 무서워서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세컷 찍고 쫓겨나다시피 나왔지요. 노태우 대통령 때도 분위기는 경직돼 있었어요.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 모르고 무작정 사진기만 눌렀어요. 당시 600명이 들어갔는데 일일이 악수해 준 게 기억에 남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사진을 매우 잘 받는 스타일. “자신만만해 보이더군요. 패기가 느껴졌습니다. 실물 보다 사진발을 잘 받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앵글에 잡혔어요.”
JC 연수원 준공해 준 김대중 전 대통령..."다리 불편해도 일일히 서서 접견"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JC로선 큰 음덕을 입은 대통령이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중 JC는 연수원 준공에 필요 이상의 과다한 자금을 투여해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었다. 연수원은 이후 민주당에서 매입해 민주당 연수원으로 활용했다. 김 전 대통령 측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배려가 있었다고 한다.
“사진도 매우 협조적이었습니다. 상대방에게 너무 고개를 숙이지 말도록 당부하는 등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다리가 안 좋은데도 서서 접견하더군요.”
부산에서 한때 JC 활동을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에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집행부가 청와대를 예방했으나, 비서실에서 사전에 예고가 되어 있지 않다며 사진 촬영을 불허한 것이다.

부업으로 도장 운영..."키 작은 콤플렉스 극복위해 무술에 빠져들기도"
그는 국술 5단, 선무도 2단인 유단자다. 한때 장안동에서 부업으로 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장안동 주먹들과도 교분을 유지하고 있다. 키가 작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무술에 빠져들어 이제는 고수 반열에 올랐다.
“제 인생에 JC는 모든 것이자, 삶의 은인과 같은 존재입니다. 직장으로 치면 JC는 ‘100점 ’만점에 그 이상을 주고 싶은 곳입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젊은 친구들을 만나니, ‘기’가 충전됩니다. 좋은 사람들 많이 만나고, 좋은 일 하는 것이 많이 보니 항상 행복합니다.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게 아까워서 아직까지 이 자리를 붙들고 있는지 모르죠.”
환갑이 가까운 나이지만 하 부장은 지금도 JC 집행부 인사들에게 깍뜻하게 대하고 존칭어를 사용한다. 개인에 앞서 조직이 있고, 조직의 직책과 직급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원칙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JC 활동으로 집안 행사는 '나몰라라'..."가족들에게 늘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도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다. 지난 30년간 JC에 몸을 받쳐온 탓에 집안이나 친구 행사에는 참석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늘 가족과 친구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하 부장의 고백이다.
“JC 특성상 주말에 행사가 많이 있습니다. 가족 행사에 참석하고 싶어도 참석하지를 못했죠.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일선에서 은퇴하면 가족에게 빚졌던 것을 모두 갚고 싶어요….”
[스포츠서울닷컴 정치팀 ptoday@med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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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장님 사진이 실물만큼 멋지게 잘 나오셨네요... 건강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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